특이한 신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사후 200년까지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코이코이족의 일원인 샤키 바트만(Saartjie Batman)으로 최근 영국 BBC를 통해 그녀의 사연이 재조명되었다.
코이코이족의 여성들은 가슴이 크고 엉덩이가 돌출되어 있어 19세기 초 유럽인들은 이들을 ‘호텐토트의 비너스’라고 불렀다.
1789년에 코이코이족으로 태어난 샤키는 10대 후반이 될 무렵 케이프타운으로 납치되어 식모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국의 의사 알렉산더 던롭을 만나게 된다.
샤키는 코이코이족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체형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알렉산더의 눈길을 끌었다.
140cm의 작은 키에 검은 피부도 특이했지만 큰 가슴과 돌출된 커다란 엉덩이를 가진 샤키가 알렉산더에게 ‘떼돈’을 벌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알렉산더는 샤키를 꾀어내 1810년 런던으로 밀항한다.
알렉산더의 예상대로 샤키는 유럽인들의 시선을 끌며 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샤키의 인기가 높아지자 알렉산더는 그녀를 일명 ‘호텐토트의 비너스(호텐토트: 코이코이족을 하찮게 이르는 말)’라고 홍보했다.
그렇게 샤키는 무려 5년이나 엉덩이와 성기를 드러낸 나체 상태로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채워줄 전시물로 살았다.
이에 더해 존중을 받기보다는 ‘미개한 종족’으로 여겨지며 그저 사람들의 호기심을 해소해 줄 ‘구경거리’에 불과한 대우를 받았다.
어린 나이에 구경거리로 전락한 샤키는 혹사를 당하다가 결국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죽어서도 편안해지지 못했다.
그녀의 신체에 큰 관심을 보여왔던 의사들이 그녀가 사망하자 곧바로 그녀를 해부했던 것이다.
또한 ‘특이한 신체’는 보존돼야 한다며 그녀를 ‘박제’하기까지 했다.
이에 샤키의 신체 일부는 표본이 되어 프랑스의 박물관에 보내졌고 대중들에게 전시되기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샤키가 기구한 삶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길고 긴 협상 끝에 샤키는 죽은 지 18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샤키를 되돌려 받으며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용서는 하지만 결코 잊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
사후에도 유럽인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던 샤키의 삶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적 폭력의 국제적 상징’이 되었다.
한편, 샤키가 태어난 부족의 이름 ‘코이코이’는 그들의 말로 ‘사람’을 뜻한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코이코이족에게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