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범죄로 꼽히는 사건이 있다.
일명 ‘대만판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라고도 하는데 사건의 희생자는 바이샤오옌이다.
그녀는 배우 겸 가수 바이빙빙의 딸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일본의 유명 만화 스토리 작가 카지와라 잇키이다.
남편 잇키는 툭하면 아내를 때리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등 화목하지 못한 가정이었다.
결국 바이빙빙은 남편과 이혼하고 바이샤오옌을 임신한 상태에서 대만으로 돌아온다.
바이샤오옌을 출산한 뒤 자신의 성을 붙여 단 둘이 살았다. 바이샤오옌은 어린 시절 엄마 덕분에 TV에도 자주 출연했으나 평범한 일반인처럼 자랐다.
그러나 얼굴이 알려진 바이샤오옌은 범죄의 표적이 됐다. 지난 1997년 4월 14일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는 학교를 가던 중 7명의 남성들에게 납치된다. 범인들은 그녀를 납치한 뒤 폭행 및 윤간을 했으며 그 직후 바이샤오옌의 새끼손가락을 잘랐다.
이들은 자른 새끼손가락과 그녀의 나체 사진을 바이빙빙에게 보내 500만 달러를 몸값으로 요구했다.
바이빙빙은 그 말을 들은 직후 바로 500만 달러를 마련했다. 하지만 경찰 내 누군가에 의해 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 말을 들은 기자들이 몸값을 건네주기로 한 장소에 먼저 가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범인들은 몸값을 받는 걸 포기하고 돌아갔으며 바이샤오옌도 풀어주지 않았다. 몸값을 받아내지 못하자 바이샤오옌은 죽이기로 결심한다.
심한 강간과 집단구타로 잔혹하게 그녀를 살해한 후 시신의 손발을 묶어 타이페이의 한 하수도에 버린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11일 만인 25일에 범인들의 아지트를 찾아낸다. 하지만 주범격인 3명은 도주하고 공범인 4명만 잡을 수 있었다.
경찰은 범인들을 심문한 끝에 바이샤오옌의 시신을 찾아냈는데, 그 모습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한다.
최초 목격자에 따르면, “처음 봤을 땐 사람이 아니라 돼지 시체로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법의관은 해당 시신을 부검했는데 사인은 질식사지만, 그 전에 심한 구타로 간장 파열, 과다출혈, 늑골 골절 등 성한 구석이 없었다고 한다.
또 머리카락은 거의 뜯겨나가 남아있지 않았고, 눈은 도려내고 목은 졸려 있었으며, 혀도 잘려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귀에는 폭죽을 집어넣고 터트려 고막이 파열돼 있었고, 몸에는 2개의 쇠파이프가 박혀있었으며, 몸 속에 발견된 못만 48개였다.
당시 그녀의 시신을 검사한 법의관은 “많은 시신을 봤지만 이렇게 끔찍한 모습은 처음 봤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들은 이 사건을 더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시신 발견 당시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보도하면서, 해당 사진은 일본까지 넘어가 화제가 됐다.
이에 유족들은 크게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앞서 바이샤오옌의 몸값 문제부터 기자들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유족들은 아예 집 앞에 “기자는 유죄”라고 적은 플랜카드를 걸어두기도 했다.
이처럼 참혹하게 죽은 바이샤오옌은 장례식도 평범하지 못했다. 시신의 상태가 엉망이었기 때문에 가발과 생전 얼굴을 본뜬 가면을 씌워 장례를 치뤘다.
당시 대만 국민들은 이 사건을 듣고 크게 분노했다. 도망간 3명의 범인들에게도 엄중한 처벌을 내리라는 목소리가 커졌으며, 총통이었던 리덩후이도 해당 사건에 많은 신경을 쏟았다.
경찰에게 “범인을 발견하면 무조건 발포해 사살하라”고 명령할 정도였는데, 범인들을 잡는 과정에서 또 다른 희생자들이 발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