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인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영화 속 실존 인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악명을 떨쳤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근황이 전해졌다.
지난 9일 방송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당시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고문했던 이근안을 다시 들여다봤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이름이 알려진 소위 ‘박처원 사단’의 일원이다.
그는 80년대 군사독재 정권 시절의 경찰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과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했다.
실제로 그에게 고문을 당했던 故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의 경우 여생을 고문의 후유증인 파킨슨병과 뇌정맥혈전증으로 고통받았다.
정계에서 그의 뜻을 펼치려 힘썼지만 결국 64세의 나이로 별세하게 된다.
故 천상병 시인 등 이근안에게 직접 고문을 당해 힘겨운 삶을 이어나갔던 사람들은 죽은 이만 있는게 아니다.
이 외에도 납북어선에 있던 어부 김흥수, 유숙열 전 문화일보 기자 및 민청학련 사건 피해자들 등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러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근안이 아직도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근안은 독재정권이 물러나며 처벌을 받을 상황에 놓이자 독재의 잔재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숨겨지게 된다.
그는 10년이 넘는 계속된 도피행각에도 그를 ‘직장이탈’의 명목으로 수배령을 가장 약한 단계로 내리는 등 계속해서 풀려난 상태로 있게 된다.
이에 지친 고문 피해자들이 그의 현상수배를 직접 하게 되고 위와 같은 전단지를 발행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 끝에 이근안은 결국 2000년에 체포되어 징역 7년형을 받고 만기 복역 후 출소한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2006년에 그는 고문 기술자로 활동했던 과거를 자랑하는 듯한 발언을 계속했다.
지난 2010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은 일을 할 것”이라며 “내 행동은 ‘애국’이었다”고 주장해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또한 “고문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해 그에 의한 피해자들에게 한번 더 상처를 주게 됐다.
이처럼 반성의 기미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그가 2008년 대한예수교 장로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정식 목사가 된 것이 알려지며 파장을 일으켰다.
반공 강연을 하고 다니며 목사 일을 하던 그의 현황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부랴부랴 장로회는 그의 목사직을 거둬들이는 ‘면직’처분을 했다.
하지만 4년 간 그가 반성 없이 목사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큰 상처를 남겼다.
최근 영화 ‘1987’이 흥행하면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이근안과의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근안은 CBS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가 기거하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자택까지 찾아갔으나 이근안은 “30년 전 얘기”라며 “기억도 잘 안 난다”고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면서 “관련된 사람들은 다 죽고 나 혼자 떠들어봐야 나만 미친X 된다”, “살 거 다 살고 나와서 지금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고 싶지 않다”라고 발언했다.
이근안은 반성하기보다는 오히려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는 그의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영화 ‘1987’에 등장하는 고문 경찰의 가혹함은 실제 ‘박처원 사단’을 모티브로 했다고 알려졌다.
CBS에 따르면 ‘1987’에서 배우 김윤석이 연기했던 실존 인물 대공처장 박처원은 영화와 달리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10년 전 노환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