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이 드디어 밝혀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 침실에 머물며 뒤늦게 첫 상황보고를 받으면서 구조의 골든타임을 흘려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28일 세월호 참사 보고서 조작 의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 (신자용 부장검사)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관련 첫 발생 보고를 서면으로 받은 시각은 오전 10시 19분~ 10시20분께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청와대는 오전 9시 19분께 TV 속보로 세월호 사고를 처음 인지했고, 오전 9시 24분 문자메시지로 청와대 내부에 공지했다.
9시 57분께 해경 상황실에서 보고받은 내용을 토대로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완성했다.
오전 10시 당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상황을 보고받는 동안 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관저의 침실에 머물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등 공식 일정을 마치면 주로 집무실이 아닌 관저로 돌아와 근무하곤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 전 실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상황보고서 1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이후 안봉근 당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해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대통령께 보고가 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신인호 위기관리센터장에게 상황보고서 1보를 완성해 박 전 대통령이 머물던 관저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신 전 센터장은 10시 12분께 상황보고서 1보를 완성한 후 상황병을 통해 관저 전달을 지시했다.
이에 상황병은 관저까지 뛰어가 10시 19분께 내실 근무자인 김모(71)씨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김씨는 여느 때처럼 별도의 구두보고 없이 해당 보고서를 박 전 대통령의 침실 앞 탁자에 올려두기만 했다.
이 시각 세월호는 108.1도로 기울고 있었고, 침실에 있던 박 전 대통령은 사고 발생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사이 김 전 실장은 위기관리센터로 내려가 박 전 대통령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좀처럼 받지 않았다.
결국 안 전 비서관이 10시 20분께 관저 내부에 직접 들어가 침실 앞에서 수 차례 부른 후에야 박 전 대통령은 침실 밖으로 나왔다.
세월호 상황보고서 1보를 접한 것도 이때로 추정된다.
안 전 비서관은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고 보고했고 박 전 대통령은 “그래요?”라고 되물으며 침실 안으로 들어간 뒤 10시 22분에야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제야 사고 상황을 파악한 박 전 대통령은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여객선 내 객실, 엔진실 등을 철저히 수색해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 시각은 청와대가 세월호 구조를 위한 골든 타임으로 잡고 있던 10시 17분을 이미 넘겨 구조가 불가능한 상태로 선체가 침몰한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이 침실에 머물며 상황보고가 이뤄지지 못하는 사이 청와대 스스로 골든 타임으로 여겼던 시각은 이미 지나버렸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국회에서 세월호 진상 조사에 나서자 이런 상황을 감추기 위해 최초 서면보고 시각이 오전 10시였던 것처럼 꾸민 답변서를 국회의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검찰은 이날 최순실이 청와대에 함께 있었다고 밝혔다.
최순실은 이영선 전 행정관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2시 15분께 아무런 검색 절차 없이 관저를 방문해 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은 전화로 짧게 지시를 한 이후에도 최순실이 관저를 찾을 때까지 내내 침실에 머물러 있었다.
최순실, ‘문고리 3인방’과 함께 45분 가량의 회의를 한 뒤 중대본 방문을 결정했고, 박 전 대통령은 미용관리사들부터 불러들였다.
미용관리사들은 오후 3시 22분에 청와대에 들어가 화장과 머리 손질을 마친 뒤 4시 37분에 나왔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은4시 33분에 관저를 출발해 5시 15분이 되어서야 중대본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5분 세월호 사고가 처음 신고된 시각부터 4시 33분까지 7시간동안 ‘국가의 수장’ 박 전 대통령은 ‘침실’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