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세계를 향해 용기 있게 외친 진심의 목소리가 이끌어낸 승리가 있다.
바로 사상 처음으로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가결시킨 2007년의 이야기이다.
또한, 21일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이 ‘위안부’ 사죄 결의안 채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미 의회 공개 청문회 현장을 담고 있어 10년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이 재조명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군은 1931년부터 1945년 패전할 까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위안소’를 설치했다.
이 때 일본군 ‘위안부’에 강제 동원된 여성 수는 8만 ~ 20만 명으로 추산되며, 조선인 여성 비율은 무려 절반이 넘는다.
UN은 일본에 진상 규명과 사죄·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권고했지만 일본은 이 권고를 무시하고 사실 자체를 왜곡했다.
이에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중국 교포들은 강하게 문제 제기를 했다.
특히 일본계 미국인 마이클 혼다 하원의원은 앞장서서 일본 정부의 공식 시인과 사과 및 역사적 책무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을 촉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7년 2월 15일 사상 첫 일본군 ‘위안부’ 공개 청문회가 열렸고, 이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청문회에는 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고(姑) 김군자 할머니를 비롯해 네덜란드인 ‘위안부’ 피해자 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가 증인으로 참석해 일본군 만행을 적나라하게 증언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1944년 16세 때 대만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3년 동안 일본의 성 노리개 노릇을 했다. 하루에 4~5명의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했다.
ADVERTISEMENT 몸은 완전히 망가졌지만 살아서 일본군의 이러한 가혹행위를 알려야겠다는 일념이 생겼다.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중풍에 걸려 있었고, 어머니는 내가 죽은 줄 알고 제사를 지내는 등 실성했었다”
라고 증언했다.
1942년 강원도 철원에서 심부름을 갔다가 17살에 일본군에 끌려간 고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도 이어졌다.
“일본군에 끌려 중국 훈춘으로 간 뒤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본군을 상대했으며 성폭력을 거부했다가 죽도록 얻어맞아 고막이 터졌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전 세계를 향해 용기 있게 외친 진심의 목소리였다. 미국 하원은 사상 첫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반대 토론자 없이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결의안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사건 중 하나로 규정했으며, 일본의 새로운 교과서들은 일본군 ‘위안부’ 비극과 다른 일본의 전쟁범죄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의안은 이어 일본 정부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정, 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질 것과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교육을 시킬 것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통과된 지 10년이 지나는 동안 결의안 통과의 주역들은 물론, 적지 않은 피해 할머니들이 타계했다.
지난 7월 23일 고 김군자 할머니가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28일에는 고 하상숙 할머니가 별세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생존자는 36명(국내 35명, 국외1명)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채로 현재 진행형이다.
9월 21일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는 실제 청문회 당시 2명의 할머니 외에 증인으로 참석해 눈물로 절규했던 네덜란드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의 사연까지 고스란히 담아내 청문회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한 생생하게 전한다.
이렇듯 묵직한 역사적 사안을 휴먼 코미디 장르 안에 대중적으로 그려내며 개봉과 동시에 뜨거운 호평을 이끌고 있는 <아이 캔 스피크>는 다시 한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수면에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전 세계 앞에서 용기 있게 증언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진취적 삶의 태도와 아직 끝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