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은 1,000원권에서 그의 얼굴을 익히 보았을 것이다.
평생 학문만 알았을 것 같은 그는 사실 조선 최고의 애처가 였다고 한다.
지난 19일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조선 최고의 사랑꾼 ‘퇴계이황’과 그의 아내 이야기를 전했다.
이황은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다.
이황은 일찍이 첫번째 부인을 병으로 떠나보낸 뒤 혼자 두 아들을 키웠다.
그러다 1530년 두 번째 부인 권 씨를 맞이했다.
부인 권 씨는 조선 중기 문신 권질의 딸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매우 총명했으나 집안이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된 이후 정신질환을 앓았다.
가족들이 귀양을 가고 죽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권 씨의 부친인 권질은 이황이 머물던 안동으로 유배를 갔고, 자신의 과년한 딸을 아내로 맞아달라 이황에게 부탁했다.
이황은 이 청을 받아들여 권 씨와 혼인을 하게 됐다.
이황은 부인 권 씨를 굉장히 아꼈다고 한다.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에게도 권 씨를 친모처럼 예우하라고 당부했다.
또 하인을 시키지 않고 직접 장에 나가 아내를 위한 먹거리를 사오곤 했으며 아내가 아플 때면 밤새 곁을 떠나지 않고 직접 병간호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아내 권씨는 정신이 온전치 못했기 때문에 살림 솜씨가 엉망이었다.
이에 이황은 중요한 자리에 해괴한 모양의 버선을 신고 나타나는가 하면, 상갓집에 붉은 색 천을 덧댄 도포를 입고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가족이 다 모인 제삿날에도 권 씨는 문제를 일으켰다.
권 씨가 제삿상의 배를 함부로 가져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황은 권씨를 탓하지 않았다.
이황이 “제삿상 위의 배를 왜 훔쳤냐”고 묻자 권 씨는 “먹고 싶어서”라고 대답했고, 이에 이황은 아무 말 없이 직접 배를 깎아 아내에게 주었다고 한다.
1546년, 권 씨 부인은 아이를 출산하다 난산으로 숨을 거뒀다.
이황의 두 아들은 이황의 뜻에 따라 3년간 권 씨의 묘에서 시묘살이를 했다.
이황 역시 부인의 묘 근처에서 암자를 짓고 기거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