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전인 1937년 4월 17일은 천재 시인으로 알려진 이상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27년의 짧은 삶을 뒤로 하고 눈을 감은 이상은 죽기 4년 전인 1933년, 스물세 살에 글 하나를 썼다.
평소 난해한 시를 많이 지은 것으로 유명한 이상은 ‘이런 시’라는 담백한 제목의 시에 다음과 같은 시구를 적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 시를 쓸 당시 이상은 사랑에 빠져 있었고, 상대는 술집 작부 금홍이었다.
이상은 현재의 서울대학교 공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결핵에 걸려 요양차 갔던 온천에서 우연히 금홍을 만난 이상은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금홍에게 진심으로 다가갔다.
금홍도 이상의 마음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서로에게 빠져있던 것도 잠시, 금홍은 자주 가출을 일삼고 집을 나갔으며 이상을 심하게 때리기까지 했다.
이상은 바람을 피우기까지 한 금홍을 끝까지 감내했지만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나고 말았다.
이후 이상에게는 나쁜 일들이 겹쳐 건강은 급격하게 악화됐으며 운영하던 다방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한 순간에 무너진 삶을 살면서도 이상은 끝까지 자신의 무능을 탓할망정 금홍에 대한 나쁜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이상은 다른 여성을 만나 결혼도 했지만 3개월 만에 결혼은 파경을 맞았다.
이상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대의 또 다른 문학가 구보 박태원은 그런 이상의 슬픈 사랑에 대해 “몸과 마음을 그대로 내어 놓은 연정에는 스스로 소년과 같이 수줍고 애탔다”고 표현했다.
이상은 사망 직전인 1936년에도 금홍과의 만남과 헤어짐, 재회를 노래한 ‘봉별기’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렇듯 이상은 헤어진 이후로도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을 진심으로 이어갔다.
‘작가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상은 ‘이런 시’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이런 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더라.” 찢고 싶어도 찢을 수 없는 마음으로 생에 주어진 밤을 지새웠을 그의 진정 담긴 사랑이 누리꾼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