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자신 이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입으로만 선한 악마입니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아파트 8층에서 투신한 한 초등학생 유서 속 구절이다.
서울 성동구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A군은 같은 반 내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성추행과 폭력을 동반한 집단 괴롭힘에 시달렸다.
아이 엄마는 절규했지만 학교는 외면했고 아이는 절망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리면 괴롭히는 아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철썩같이 믿었던 아이에게 끝내 열리지 않았던 학폭위는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희망이 박살나자 아이는 유서를 품에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게 된 것이다.
20미터가 훌쩍 넘는 높이에서 뛰어 내렸던 아이는 기적같은 천운으로 목숨을 건지게 됐다.
회복세가 좋다고는 하지만 시신경 손상 및 뇌손상이 의심되는 징후가 있어 정밀검사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결국 아이가 투신하고 23일이 지난 지난 11일에서야 열린 학폭위는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이와 같은 학교 측의 소극적인 대응에 사건 축소 및 은폐의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A군이 재학 중인 초등학교 관계자는 “학교에서는 사건을 축소 은폐하지 않았고,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사안을 처리했다”며 반박에 나섰다.
학교 관계자는 “피해 학생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학폭위를 열어 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며 “담임선생님이 괴롭힘 사실을 인지하고 조치할 물리적 시간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학교 홈페이지에 학교장 명의의 글을 업로드해 “사고 발생에 대해 인지한 즉시 교육청에 서면 보고했고, 경찰과 공조했다”고 밝혔지만 언론 보도 후 학교 측은 글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상태다.
이와 같은 학교의 주장은 피해 학부모 측 주장과는 차이가 상당히 커 논란이 진행중이다.
A군 측 법률 대리인 이길우 호사는 “학교 측 입장은 피해 학생과 부모에게 두 번 상처를 주는 것이고 분개할 일”이라며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 중 B군에게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고, 6학년때 다시 같은 반이 돼 학기 초부터 시달렸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 어머니가 가해 학생인 B군 어머니와 담임에게 여러 차례 “걱정된다”는 의사를 전달했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학교에서도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또 한편에서는 조사 대상이 초등학생이고 조사 인력의 비전문성 등의 근거를 들어 학교 측 조사의 근원적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학교폭력의 경우 목격 학생들의 진술 외에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학교폭력전담기구 자체도 교사로 구성돼 전문 수사기관이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학교 측은 뒤늦게 가해 학생들을 강제 전학시키거나 출석정지 10일 등의 징계를 내렸지만 방학을 앞둔 데다 졸업을 앞둔 6학년인만큼 처벌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A군과 가해 학생들이 같은 중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는 만큼 A군 측의 불안감은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교육청의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고 하루빨리 가해자들을 분리해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