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일가의 ‘갑질’ 논란이 화제인 가운데, 영화 ‘베테랑’의 모티브가 되었던 ‘맷값 폭행’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1일 KBS는 2010년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이자, 물류회사 M&M 대표였던 최철원으로부터 폭행당한 피해자 유홍준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사건을 재조명했다.
M&M은 동서상운(주)을 인수 합병하면서 동서상운에 소속돼 있던 화물차 운전기사들에게 화물연대를 탈퇴하고 노조에 가입하지 말 것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다.
당시 화물연대 지회장이었던 유씨는 당연하게도 계약 체결이 거절됐다.
부당한 이유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유씨는 2010년 1월부터 SK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10월이 되어서야 차량을 인수해주겠다는 답을 받았고, 이에 M&M 사무실로 향했지만 그곳에는 야구방망이를 든 최철원과 간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철원은 유씨를 무릎 꿇리고 “합의금이 2천만원이니까 한 대에 100만원이라 치고 스무 대만 맞아라”라며 야구방망이로 폭행을 시작했다.
열 대를 맞은 유씨가 ‘살려달라’고 빌자 최철원은 “그럼 지금부터는 한 대에 300만원씩이다”라며 세 대를 더 때렸다.
그리고는 화장지를 둘둘 말아 유 씨의 입안에 밀어 넣고 얼굴을 가격했다.
최철원은 피범벅이 된 유씨의 얼굴에 ‘맷값’으로 1천만원짜리 수표 두 장을 던졌고, 합의서를 꺼내며 “읽을 필요 없으니 서명만 해라”라고 요구했다.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는 유씨는 언론사, 국민권익위, 인권위 등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재벌이 얽힌 폭행 사건에 선뜻 나서는 곳이 드물었다.
극적으로 한 변호사와 연결이 됐고 언론 매체를 통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며 여론이 분노로 들끓었다.
최씨의 구속과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빗발쳤고, 경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며 최씨는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 ‘베테랑’의 결말처럼 통쾌하지 않았다.
경찰에 출석하며 “사회적으로 시끄러워져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던 최철원은 단 한번도 유씨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심지어 법정에서 “군대에서 맞는 ‘빠따’ 정도로 생각하고 ‘훈육’ 개념으로 때렸다”라는 충격적인 해명만 했을 뿐이다.
1심에서 최철원은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으며 풀려났다.
오히려 검찰은 유씨를 업무 방해 혐의로 기소하기까지 했다.
유씨는 “가슴이 아프다. 피해자의 마음은 이렇게 미어지는데 돈과 법은 그걸 무시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지만, 유씨는 “대기업이더라도 국민을 너무 무시하고 얕보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 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변화가 오지 않겠냐”며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최철원은 2006년 층간 소음 문제를 제기한 이웃을 야구방망이를 들고 위협한 전력도 있다.
당시 파출소는 ‘상호 다툼’으로 처리하고 본서에는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M&M 전 직원들에 따르면 사냥개 도베르만을 사무실에 데려와 여직원들에게 “요즘 불만이 많다며?”라며 개줄을 풀고 “물어”라고 명령하며 협박하기도 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어디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없었고, 8년이 지난 지금 한진 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사건이 터졌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