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39년동안 강간살인범으로 누명을 쓴 채 억울하게 살아왔다.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영화 ‘7번 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된 ‘춘천 강간 살인 조작 사건’에 대해 다뤘다.
‘춘천 강간 살인 조작 사건’은 지난 1972년 춘천경찰서 파출소장의 9살 딸이 실종되면서 시작됐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다 만화방에 가겠다며 헤어진 소녀는 이틀 뒤 성폭행 당한 사체로 발견됐다.
수사가 시작된지 열흘 만에 경찰은 범인을 검거했고, 검거된 범인은 바로 만화방 주인이었던 정원섭 씨였다.
평소 정 씨가 만화방에 온 여자 아이들을 자주 성추행 했다는 만화방 직원들의 증언과 현장에서 범인이 흘린 것으로 보이는 머리 빗과 연필이 발견됐고, 정 씨의 자백까지 더해지며 재판 결과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완벽한 수사와 재판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전말이 모두 드러나게 됐다.
당시 이 사건을 보고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크게 화를 내며 사건을 빨리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내무부 장관은 열흘 안에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면 관계자를 문책하겠다고 경고했고, 대대적인 작전이 펼쳐지게 됐다.
이미 만화방에 오지 않았다는 정 씨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경찰은 정 씨를 불러 폭행과 고문을 가했다.
검거 시한 열흘이 끝나는 날, 경찰의 폭행과 협박에 의한 강압수사를 이기지 못한 정 씨는 결국 거짓 자백을 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정 씨의 혐의를 벗겨 줄 목격자까지 폭행하고 협박을 해 증언을 묵살시키고 거짓 진술을 하게 만들었다.
이 후, 정 씨는 재판에서 “경찰의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하고 허위로 자백했다”고 호소했고, 증인들도 허위 진술을 주장했지만 이 후 증언이 번복되거나 조작되며 결국엔 무기징역형을 확정 받게 됐다.
정 씨는 이 후 모범수로 선정돼 징역 15년형으로 감형이 됐고 1987년 출소했다.
억울하게 징역살이를 한 정 씨는 교도소에서 나온 후 10여년간 자신의 누명을 풀기 위해 재판을 준비했다.
오랜 시간 준비를 해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그의 재심을 모두 기각시켜 버렸다.
정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2007년인 무려 35년 만에 다시 재판이 열려 결국 무죄 판결이 선고됐다.
하지만 검찰은 곧바로 항소와 상고까지 진행했고, 긴 재판 끝에 2011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이때 정씨의 나이는 77살로, 무려 사건 발생 후 39년이 지난 시간이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성범죄자’로 낙인 찍힌 채 살아온 정 씨는 또 한 번 국가에게 상처를 받게 됐다.
국가가 수사나 재판을 잘못해서 억울하게 구금되거나 징역살이를 한 경우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형사 보상 제도’가 있다.
그리고 이런 형사 보상금과는 별개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정 씨와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1심에서 26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 판결은 항소심에서 완전히 뒤집혀버린다.
‘형사 보상 제도’의 소멸시효 기간이 열흘 지났다며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된 날 또는 이번 사건처럼 형사 보상 청구를 한 경우에는 형사 보상 결정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내에 청구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정 씨는 형사 보상 결정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하고도 10일이 된 날 소를 제기했고, 손해배상액은 0원이 됐다.
안타까운 정 씨의 사연이 전해지고 국민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에 표창원 의원은 지난달 9일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을 국가가 회피할 수 있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며 정원섭 법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고문과 같은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입은 사람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한 경우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