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회부의장은 지난 20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방안을 권고했다고 전했다.
정 부의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지난 3월 16일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고견을 청취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재조명되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 아덴만 여명 작전
때는 2011년 1월 15일, 소말리아의 해적에게 피랍된 1만톤급 화물선 삼호 주얼리(SAMHO JEWELRY)호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대한민국 주도 아래진행된 대한민국, 미국, 오만, 파키스탄 해군의 연합작전.
일명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라고도 불린다.
납치 6일만인 2011년 1월 21일 청해부대 소속 UDT/SEAL 팀의 급습으로 해적 8명 사살, 5명 생포와 동시에 인질 21명 전원 구출의 성과를 낸 우리군이 해외에서 수행한 최초의 인질구출 작전이다.한국 선원 8명을 비롯해 미얀마인 11명, 인도네시아 2명 총 21명의 선원 모두를 구출하였다.
2011년 1월, 삼호 주얼리 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당했다. 선원들은 해적의 접근을 보고 재빨리 선미의 로프 저장창고로 대피했으나 3시간 15분 만에 뚫렸고 해적들은 배를 소말리아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더 이상의 납치를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명박 대통령은 청해부대(당시 지휘관 해군 항해대령 조영주)에게 해적 소탕과 인질 구출을 명령했다.
요약
1.2011년 1월, 우니라나 1만톤급 삼호 주얼리호가 아프리카의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
2. 구출 1차 작전 게시) 주변에서 훈련 중이던 최영함이 즉시 구출을 위해 삼호주얼리호로 출발, 이틀 뒤 주얼리호의 30km까지 접근.
(1차 작전은 대통령의 승인 없이 소말리아 해적 4명이 보트를 타고 인근의 몽골 선박을 피납하기 위해서 내려오는 과정에 링스헬기로 저격을 하면서 시작됨)
3.이후 해적들이 모선과 합류하리라는 첩보를 받고 합참의장이 국방부장관(김관진)에게 승인을 받고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서 여명작전을 실행.
4.해군 UDT/SEAL 삼호 주얼리호 진입 등반
5.공격팀 선교 완전 장악
6.첫 인질 구출하게 되고 인질 21명 전원 구조 ‘아덴만 여명 작전’ 종료
(그 결과 해적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8명의 해적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사망자는 없었다. 다만 선장이 복부에 관통상을 입음)
7.
관통상을 입은 석선장은 읍급 처치 후 오만의 술탄카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11시간 만에 서울공항에 도착하고 아주대학교병원으로 옮겨져 ‘이국종 교수’에게 치료를 받았다.
(이때 야당은 해군 대원들의 총에 석선장이 맞은거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며 지적했지만 석선장이 무사히 깨어나면서 아니라는 것이 밝혀짐. .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데 또 정치질 ㅋㅋ)
가장 성공적인 대테러 작전 이후…
석 선장은 완쾌하고 이명박 대통령께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고, 해군 충무공 훈련원에서 3급 군무원으로 일함.
1월 21일 대한민국 해군 최영함이 주도한 아덴만 여명작전은 새벽 4시 58분에 시작해서 약 5시간만인 오후 2시 56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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