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순, 김길태와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나타나면 많은 사람은 그들이 ‘왜’ 그런 행위를 했나 궁금해 한다.
그 어떤 이유로도 범죄가 용납될 순 없겠지만 많은 학자들는 유전적, 환경적, 성격적 요인을 제시하며 그 이유를 찾는다.
하지만 연쇄 살인마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합리적인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그저 하고 싶어서 또는 살인이 즐거워서 저질렀다고 한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극히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은 자신의 범죄 행위를 반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추억거리로 삼고, ‘좋았던’ 시절이라 평가하는 게 다수다.
그중 일부분은 그 추억을 자신 혼자 간직하다 못해 각종 수단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대다수 ‘돈’을 노리고 그런 일을 저지른다.
개중에는 아직도 사회에서 활동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킨 인물도 있다.
반성은커녕 자신의 범죄를 돈벌이에 이용한 뻔뻔한 범죄자들을 모아봤다.
1. 아즈마 신이치로(東真一郎)
지난 1997년 일본 고베의 한 초등학교 교문 위에서 남자아이의 잘린 머리가 발견됐다.
범인은 당시 14살이었던 아즈마 신이치로로, 그는 피해자 2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후 반성 없는 태도로 일본 국민을 분노케 하며, 소년범이라는 이유로 고작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0년 출소한 아즈마는 신분을 숨기고 조용히 사는 듯했지만, 지난 2015년 ‘절가(絶歌)’라는 제목의 수기를 발표하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자아도취적인 그의 수기 내용은 자기합리화로 점철된 변명으로 가득 차 있다는 평이다.
피해자 가족은 즉시 항의해 판매 중지를 요구했으나 3일 만에 6만 7,000부가 팔려나가는 등 일본 사회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2. 사가와 잇세이(佐川一政)
일본 출신의 사가와 잇세이는 지난 1981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사가와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여성을 저녁 식사를 핑계로 집에 초대해 피해자를 소총으로 살해했다.
그 후 죽은 피해자를 시간하고 시신 일부 부위를 요리해 먹는 등 끔찍하며 엽기적인 행각을 저질렀다.
사가와는 목격자의 신고로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혔지만, 재판에서 심신미약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후 사가와는 ‘식인’이라는 타이틀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언론의 관심을 즐기며 TV CF에 출연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2009년 자신의 범죄 행위를 상세히 묘사한 ‘악의 고백’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현재까지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그는 가장 뻔뻔한 살인마 중 한 명으로 꼽힌다.
3. 메리 벨(Mary Bell)
메리 벨은 영국 뉴캐슬(Newcastle)에서 태어나 지난 1968년 11살의 어린 나이로 공범과 함께 두 명의 아이를 살해했다.
그 후 시체를 훼손하고, 피해자의 부모님이 슬퍼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훔쳐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메리 벨은 법정에 서게 됐을 때도 눈물 한 번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을 보고 미소짓는 여성을 발견하고 “재판장님, 저 여성에게 나가라고 해주세요. 지금 여기가 웃을 장소인가요?”라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메리 벨이지만 성인이 된 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988년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화하는 하여 금전적인 보상을 받아 사회적 물의를 빚는다.
메리 벨이 책을 출간한 이후 많은 사람의 반발로 인해 영국에서는 연쇄살인마가 자신의 수기를 출간하는 일이 불가능해지기도 했다.
4. 로버트 픽턴(Robert William Pickton)
캐나다 출신의 로버트 픽턴은 지난 1983년부터 2002년까지 49명의 여성을 살해했다.
그리고 유해를 갈아 돼지 사료로 사용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여 일명 ‘돼지 도살장 살인마’라고도 불린다.
체포된 후 종신형을 선고받은 그는 감옥에서 자신이 ‘무죄’임을 주장하는 책을 출간했다.
로버트는 책을 통해 자신은 그저 돼지 농장을 운영했을 뿐이며 과학 수사가 잘못돼 범인으로 몰렸다는 등의 뻔뻔한 변론을 늘어놓았다.
그의 책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판매됐으나 고객들의 항의로 며칠 만에 판매가 중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