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이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을 ‘전설’로 만들었다.
육상 경기에서 1등과 3등을 차지한 흑인 선수 두 명이 시상식 도중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하던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이 사진은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그들의 앞에 있는 백인 선수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과연 그는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을까?
1968년 제 19회 올림픽에서 미국의 토미 스미스(Tommie Smith)와 존 카를로스(John Carlos)는 육상 200m 경기에서 각각 1등과 3등을 차지했다.
메달을 받기 위해 단상 위에 오른 두 선수는 검은 장갑을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드는 자세를 취했다.
이는 ‘블랙 파워 살루트(Black Power Salute)’를 상징하는 동작이었다.
흑인인권운동 지지에 따른 대가는 혹독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들의 행동을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폭력적 행위라고 규정하며 두 선수를 선수촌에서 쫓아냈다.
하지만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흑인인권운동을 지지한 이 사진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은메달을 받은 호주 출신의 백인 선수 피터 노먼(Peter Norman)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노먼은 자신과 실력을 겨루던 경쟁자들이 단상 위에서 이러한 행동을 할 것이라는 알게 되자 해당 선수들에게 까만 장갑을 직접 나누어주었다.
함께 팔을 들지는 않았지만 당시 정의를 상징하던 올림픽 배지를 착용하여 그 순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노먼은 이런 행동들 때문에 귀국 후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은메달을 수상했음에도 다시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함은 물론, 고국에서 이단자로 낙인 찍혀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노먼은 노력 끝에 학교 체육교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흑인인권활동에 참여했다.
한 때 스미스와 카를로스를 비난하는 조건으로 국가올림픽위원회에 다시 가입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의를 수 차례 받았지만 노먼은 이를 모두 거절했다.
노먼은 2006년에 세상을 떠났고,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당시 직접 그의 관을 운구했다.
카를로스는 “나와 스미스는 약간의 좌절을 맛봤던 것이지만, 노먼은 홀로 한 나라와 맞서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스미스는 “우리는 당시로서는 정말 큰 도전을 한 것이다. 그러나 노먼은 우리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나도 동참하겠다’고 말했다”며 노먼을 추억했다.
노먼은 자신의 행동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고 시선을 피하지도, 태도를 바꾸지도 않았다.
노먼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지난 2012년에서야 호주올림픽위원회는 그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그의 인권운동에 대한 공헌에 감사를 표했다.
노먼은 전설의 사진 속에서 늘 ‘위대한 흑인 선수들 옆에 있는 백인 선수’로만 인식되지만,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노먼은 만약 사진이 조형물로 만들어진다면 ‘누구나 위대한 흑인 선수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자신의 자리를 비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렇듯 전설의 사진 속에서는 두 명의 선수가 아니라 세 명의 선수 모두가 마땅히 존경받고 오랜 시간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