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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일본 열도’ 뒤흔든 IQ 210 신동 ‘김웅용’의 이야기


1967년, 한국의 한 신동은 일본 전역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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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인 신동 ‘김웅용’이었다.

1967년 11월 2일, 후지 TV에서 방영한 ‘만국 깜짝 쇼’ 첫 화에 그는 게스트로 출연했다.

보통이라면 셈도 제대로 못 할 나이인 4세였던 김웅용은 도쿄대 학생 두 명이 간신히 풀어낸 적분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모습으로 일본 전역에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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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용은 대학교수였던 부모님 사이에서 자랐는데, 1살의 나이에 이미 한자를 읽혔고 5살 무렵엔 4개국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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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검사 결과는 ‘210’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다.

당시의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올랐으며, 방송이 나간 뒤 일본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 대통령감이라며 감탄을 마다치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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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용은 이러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놀라운 학업 성과를 보여 줬다.

5세에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수업 청강을 했고, 8세에 미국 콜로라도 주립 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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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엔 NASA의 연구원이 되며 그의 인생은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도 굴곡은 있었다. 지능으로는 누구보다 우수한 그였지만 대인 관계에 있어서 취약했던 것이다.

pixabay

그는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극심한 우울 증세로 고민하다 삶의 진정한 소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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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와 같이 평범한 삶을 살며 가정을 일구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19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김웅용은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돌아온 그에게 의외로 세상의 눈은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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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을 납부하는 것부터 그에겐 어려움이었던 것.

이런 모습에 사람들은 실망하며 그에게 ‘몰락한 천재’라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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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러한 오명을 떨쳐내려 했지만 도가 지나친 관심과 소문에 피로를 느끼는 것 역시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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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웅용은 충북대에 진학해 조용히 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평범하게 공귀업에 취직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천재로서의 타이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MBC

그러나 대학 시절부터 만나온 아내을 만나며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의 화려한 과거를 전혀 몰랐던 아내는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그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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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독한 삶에 큰 변화를 맞이했고,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게 됐다.

한편 그는 현재는 신한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