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전남 나주시 드들강 변에서는 알몸의 시체가 떠올랐다.
17살 박모 양으로 확인된 이 시체는, 검시 결과 성폭행한 흔적과 목 졸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박양의 신체에서 다른 사람의 DNA가 검출됐지만 신원 미상이었다.
직접적인 목격자도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결국 ‘드들강 살인사건’은 실마리 하나 찾지 못한 채 장기미제사건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2012년 8월 박양의 신체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됐다.
그는 이미 또 다른 강간 범죄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던 김씨의 DNA였다.
범행 당시 27살이었던 김씨는, DNA 증거에 대해 “성관계는 했으나 죽이지 않았다”고 계속해서 자백을 거부했다.
검찰도 김씨가 박양을 살해했다는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고, 김씨는 ‘혐의없음’ 처분을 받고 만다.
그렇게 묻힐 줄 알았던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은 2015년 7월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통과되면서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김씨의 ‘살해 혐의’를 입증해줄 결정적 증거가 등장했다.
증거를 찾아낸 사람은 다름 아닌 올해 71세 이정빈 단국대 석좌교수다.
앞서 범인은 ‘성폭행’은 했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살인을 밝혀내려면 무엇보다 피해자의 사망 시기를 확인하는 게 관건이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사건 해결에 참여했던 이 교수는 과학수사팀이 작성한 문서에서 ‘용의자의 정액과 피해자의 생리혈이 섞이지 않았다’는 기록을 발견한다.
이 교수는 해당 기록이 용의자의 살해 여부를 판단할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정액과 생리혈이 섞이지 않는 현상을 실험해보기 위해 이 교수는 직접 자신의 혈액은 뽑았다. 정액은 아들(38)에게 부탁했다.
실험 결과 이 교수는 정액과 생리혈이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않는 이상 7시간 가까이 섞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이를 이번 사건에 적용해보면 박양이 성폭행을 당한 후 별다른 이동이나 움직임 없이 곧바로 살해됐다는 것을 추론해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검찰은 김씨가 박양을 성폭행한 직후 목 졸라 살해해 강물에 빠트렸다고 판단, 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김씨는 끊임없이 무죄를 주장했으나 1심, 2심 모두 김씨의 죄질이 나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오늘(22일) 오전에 열린 대법원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김씨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원심을 유지했다.
이 교수의 투철한 직업정신과 검찰의 끈질긴 수사 덕분에 2001년 박양을 죽인 살인범 김씨는 범행 16년 만에 법의 단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