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가느다란 몸에 짧은 머리를 한 마라토너가 마라톤 결승선에 도착했다.
올림픽을 통해 특정 인종의 우월성을 보여주려 했던 히틀러의 계획을 단번에 무너뜨린 주인공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였다.
손기정 선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기에 일장기를 가슴에 달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당시 금메달리스트가 메달과 함께 받았던 월계수로 자신의 가슴팍에 달린 일장기를 가렸다.
승리를 거머쥔 순간에도 조국의 슬픈 현실을 기억했다.
그러나 그의 옆에는 한 명의 한국 선수가 또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바로 남승룡 선수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남승룡 선수는 2시간 31분 42초의 기록을 세워 동메달을 획득했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에게 가려져 화제를 모으진 못했으나, 남기정 선수는 각종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했던 실력자였다.
당시 올림픽 선발전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두 사람은 경쟁 상대였다. 그러나 언제나 가까운 동갑내기 친구로서 서로를 응원하며 지내왔다.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도 남승룡 선수는 축하의 말을 전했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질투란 없었다.
그러나 남승룡 선수는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딱 하나, 손기정 선수를 부러워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가슴팍의 일장기를 가렸던 손기정 선수의 ‘월계수’.
남승룡 선수는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독립 후 당당히 태극기를 달고 마라톤 경기에 출전했다.
1947년 보스턴마라톤에서는 10위 안에 드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가 지도한 서윤복 선수는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손기정 선수의 월계수를 부러워했던 남승룡 선수.
그는 가슴팍의 일장기를 숨기지 못했어도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선수로, 그리고 훌륭한 지도자로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