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TV조선 ‘구조신호 시그널’에서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50년 간 고시생활을 한 김기두(72) 씨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김기두 씨는 지하철 2호선 서울대 입구역 인근에 주로 출몰한다. 그는 늘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온다.
“20년 전에도 그 옷이었다. 안 씻으니 냄새가 난다” 등 주변 상인들에게도 유명했다.
그는 지하철에서 20년 간 500원 짜리 칫솔을 팔고 있다.point 151 | 1
하지만 가끔 선의로 칫솔을 구매하는 사람이 있을 뿐 아무도 사지 않았다.
이날 보안관에게 단속을 당한 김 씨는 이런 일이 익숙하다고 한다.
이어 보안관들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말에 김 씨는 헌법을 거론하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point 105 | 1
그의 카트 안에는 아주 낡은 영자 사전과 신문들, 망치 등이 들어 있었다.
김기두 씨는 “망치를 갖고 다닌 지 오래 됐다. 밤길에 누가 잡으면 단 한 방에 물리칠 수 있다”며 보안용이라 말했다.
그리고 김기두 씨가 향한 곳은 공중전화 부스였다. 그는 “여보 사랑해”라며 다정한 대화를 하곤 출발했다.
아내한테는 하루에 5~6번씩 전화를 한다고 덧붙였다.
김기두 씨는 집에 돌아가며 표정이 불안해졌다.
“어두운 데선 날 따라오지 말라. 안좋은 일 당한다”며 제작진에게 말했다. 자신을 따라오다 죽은 이가 있다는 것.
김기두 씨의 집인 신림동 고시촌 원룸은 관리가 하나도 안 된 더러운 환경이었다.
목욕도, 빨래도 하지 않았고, 주거 환경이 꽤나 더러웠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point 100 | 1
그의 손엔 반지가 꽉 끼워져 있었는데, 손이 퉁퉁 부어 있어 한 눈에 보기에도 너무 아파 보였다.
늘 자정을 넘겨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김기두 씨는 정말 구조가 필요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김기두 씨 방에는 양친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는 “모친이 나를 수십 년 간 뒷바라지하다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노인은 50년 째 새벽부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하버드 대학교의 전공 교재를 사용하고 있었다.
김기두 씨는 어려운 경제용어와 원리를 술술 풀어 설명하기까지 했다.
김기두 씨는 매일 지하철 역 가판대에서 영자 신물을 구매하고 바로 직독직해를 할 정도로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point 114 | 1
어느날 할아버지는 서초동으로 향했다. “여기가 평화 성금을 제일 많이 내는 곳”이라며 한 빌딩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유명 변호사들의 사무실이 밀집한 곳이었다.
하지만 찾는 변호사는 사무실에 없었다. 그렇게 또 다른 근처 건물로 들어가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이 때 한 여성이 다가와 김기두 씨에게 흰 봉투를 건넸다.
제작진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오시는 분이다”고 말한 이 여성은 유명 변호사의 비서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직업이 없으니까 도와준다.point 149 |
서울대 법대생들이 다 모범생들 아니냐”고 자랑스러워했다.point 26 | 1
김기두 씨는 실제로, 1970년에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법학과 66학번인 그는 합격 당시 신문에도 실렸었다.
그러나 김기두 씨는 사법 시험에 5회 떨어졌고, 그 다음 시험들도 전부 낙방했다.point 160 |
그는 1차는 쉬웠지만, 2차가 어려웠다고 말했다.point 22 | 1
그는 고시 공부를 10년을 했고, 그 후 그만뒀다.point 147 |
결국 법조인의 꿈은 이룰 수 없었다.point 15 | 1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원로 변호사들이 모두 김기두 씨의 동문이었다.
그들은김기두 씨의 딱한 사정을 알고, 평화 성금이라는 명목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김기두 씨는 몸에 늘 왕관 모양 액세서리를 하고 다닌다. 대기업 ‘크라운’ 로고가 자기 가족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신이 왕이기 때문에, 왕관 모양을 좋아한다는 그의 꿈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늘 누군가 자신을 도청하고, 독이 든 음식으로 살해하려 한다는 피해 망상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아내와 통화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김기두 씨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연결조차 안 된 전화에 혼잣말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김기두 씨는 돈이 생기는대로 아내에게 송금을 하고 있었다.
주민센터 직원은 “이혼한 지 40년이 됐는데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신다”고 전했다.point 99 | 1
그의 사정을 잘 아는 한 직원도 “아들과 딸이 김기두 어르신을 떠맡게 될까봐 엄청 싫어한다”고 말했다.
경주에서도 뼈대 있는 가문의 장손이었던 김기두 씨는 어쩌다 이런 상태가 되어버린 걸까.
김기두 씨 친척은 “판사 되면 떠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point 87 | 그게 안 되니까, 아이들도 공부 시켜야 하고 더 생활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아내가 떠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안타까워했다.point 139 | 1
어렸을 때부터 수재로 이름났던 김기두 씨. 그러나 10년간 고시공부에 매달리며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전문의는 “30대 부터 조현병을 앓고 계셨던 것 같다. 피해망상, 과대망상, 환청 등의 증상이 있다”고 말했다.
김기두 씨 친누나는 “군대 가서부터 정신이 이상해졌다.point 150 |
아이들과 아내를 때렸다.point 11 | 병원에 가자고 별 짓을 해도 안 됐다.point 26 | 나도 포기하고, 동생들도 포기했다.point 42 | 다들 상처를 받았다”고 사연을 전했다.point 59 | 1
‘시그널’ 제작진은 김기두 씨의 방을 청소하고 좋은 가발과 새 안경을 선물했다.point 97 | 1
글문제가 심각한 손가락도 진찰했다.point 79 | 그런데 이 과정에서 김기두 씨는 자리를 벗어났다.point 100 | 1
그를 치료하기 위해,김기두 씨의 서울대 선배인 박찬종 변호사를 초청했다. 그러나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우리나라 고시 낭인들의 문제가 저 분에게 전부 함축돼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며칠 후, 김기두 씨는 경북의 친척집에 방문했다.point 84 | 1
친척들은 변함없이 따뜻하게 김기두 씨를 반겨주고, 기두 씨가 좋아한다는 감주를 내어주었다. 친척들도 그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유복했던 김기두 씨는 고시 준비로 인해 재산을 모두 날리고, 처참한 세월을 겪게 되었다고 전했다.
부모의 기일을 잊지 않고 꼭 챙기는 김기두 씨. 어머니는 서울 법대 입학 당시, 서울까지 올라와 고시 뒷바라지를 했다고 말했다.
김기두 씨가 마음의 문을 열고 고통의 삶을 벗어나길 바라며 ‘시그널’ 제작진은 “계속해서 김기두 씨를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