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이기에 앞서 한 나라의 국민이니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꽃 같은 20대에 나라를 지키려 힘든 훈련을 견디는 남자친구를 생각하면 안쓰럽지만 사실 기다리는 고무신 여자친구도 마냥 편한 건 아니다.
분명 잘 기다리고 사랑할 수 있을 거라 다짐했는데, 나도 모르게 문득 느껴지는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1. 휴가계획 다 세워 놨는데 휴가 밀릴 때
짧게는 일주일에서 한달, 길게는 몇 달 동안 얼굴을 못 보는 거야 이해할 수 있다. 꼭 밖에서 데이트해야되는 건 아니고, 면회를 가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휴가를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사정으로 밀려 벌릴 때다.
남자친구의 휴가 일정에 맞춰 내 스케쥴을 조정하고 계획도 완벽하게 짜놨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청천벽력 같은 취소 소식.
물론 남자친구도 속상하고 미안해한다는 사실을 다 이해하면서도 서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고 화낼 수도 없으니 속만 까맣게 타들어간다.
#2. 휴가 나와서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날 때
기다리고 기다려서 겨우 휴가를 나왔는데 도통 얼굴을 보기가 힘든 남자친구. 오랜만에 나와서 신나는 것도, 그 동안 못 봤던 친구들과 만나 놀고 싶은 것도 이해한다.
그래도 명색이 여자친구인데 휴가 나온 남자친구 얼굴 한 번 보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왠지 서운하고 서럽다.
그렇다고 나만 만나라고 응석부릴 수도 없으니 더욱 애매한 상황이 된다.
특히 친구들과 만나면 대부분 술을 마시기 때문에 연락도 잘 안 돼 더 속이 상하기도 한다.
#3. 주변 사람들이 기다리지 말라고 할 때
전화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에만 집중하고, 먼 거리를 달려가 잠깐 얼굴 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편지를 자주 쓰는 것도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위한 것이니 다 즐겁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괜찮지 않을 수가 있다.
남자친구와 나 사이의 일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군대가 문제라며 헤어지라고 할 때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하나하나 해명하기 지치고 그렇다고 남자친구에게 얘기하기도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혼자서만 식힐 때가 부지기수다.
#4. 면회 가려고 새벽부터 준비할 때
세상 제일 가는 집순이에 늦잠을 사랑하는 나인데 고무신이 되고 나서부턴 면회 가는 날이면 새벽형 인간으로 변신한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요리까지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조차도 낯선 느낌이다.
부대는 왜 이렇게 먼 곳에 있는지 한참 지나서야 도착해 면회 한 번 했을 뿐인데 하루가 다 가 버리는 느낌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걸려도 얼굴 보는 건 고작 몇 시간 밖에 안 되니 마음은 행복하지만 몸이 피곤한 건 어쩔 수가 없다.
#5. 보고 싶은데 못 만날 때
군인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수많은 상황 중에서도 가장 속상할 때는 바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때.
둘 만의 특별한 기념일이거나, 지친 하루에 위로가 필요할 때, 혹은 다정하게 지나가는 커플을 볼 때 등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남자친구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차라리 남자친구가 없으면 또 모르겠는데 있는데도 볼 수가 없으니 어쩐지 더 속상하고 우울하다.
괜히 카톡방에 ‘보고싶다’ 메시지도 보내고 사진첩도 뒤져 보지만 허한 마음이 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