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립운동 등에 참여한 기업들이 재조명 받고 있다.
이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에 잘 들어난다.
친일파 후손들은 부당하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잘 살고 있지만 나라를 위해 모든 재산을 쏟아 부었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의 형편은 대부분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에 망할 것을 각오하고 독립군의 자금줄이 되어 줬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주류 기업으로 성장한 곳들도 있다.
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바라며 아무런 조건 없이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한 착한 기업들을 소개한다.
3.1절이 지났지만 기업가들의 숭고한 희생과 애국정신을 가슴 깊이 새겨보자.
1. LG
LG그룹의 창업회장인 구인회 회장은 중경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1942년 7월 구인회 회장은 독립운동가인 백산 안희제 선생의 독립운동 자금 부탁에 흔쾌히 1만 원을 후원했다.
일제로부터 지명 수배를 받고 있던 안희제 선생에게 독립자금을 준다는 것은 집안이 풍비박산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구인회 회장은 “당할 때 당하더라도,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힘을 보태야 겠다”며 1만 원을 전달했다.
2. 교보생명
교보생명 창업자인 신용호 회장은 물론 그의 아버지와 형들도 독립운동을 했다.
독립운동을 하는 가족들 때문에 그는 늘 일제에 쫓겨 다녀야 했다.
신용호 회장은 19살에 장사를 하겠다며 집을 나와 중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민족시인 이육사를 만나 그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보태며 결국 가족들과 같이 다시 독립운동에 나섰다.
3. 유한양행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일한 박사는 9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대학을 마쳤으나, 독립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1926년 귀국해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그는 ‘해외 한족 대회’의 집행위원과 미국 전략 정보처 OSS의 한국담당 고문으로 활약했으며, 1942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항일무장독립군 창설을 주도하고 직접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4. 동화약품
동화약품 민강 사장은 동화약품의 ‘까스활명수’의 개발자인 민병호 선생의 아들이다.
그는 1920년대에 까스활명수를 팔아 번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민강 사장이 있는 동화약품의 본사 ‘서울연통부’는 1920년에 상하이 임시정부의 연락책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는 독립운동에 연루돼 두 번의 옥고를 치러야 했고, 결국 숨을 거뒀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5. GS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아버지 허준은 만주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한 ‘백산상회’를 공동 설립했다.
그의 할아버지 허만정 선생도 일제 몰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했다고 알려졌다.
‘백산상회’는 독립운동 전체 자금의 60%가량을 지원했던 곳이다.
백산상회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영리 기관으로 가장했으나 실제로는 독립운동의 국내 연락 및 자금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