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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ies: 사회

요즘 10대들은 모르는 1990년대 국내 ‘대형 사건’ TOP 10


1990년대에 대한민국에서는 유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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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공화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대형 참사가 해를 걸러 발생했다.

특히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는 재난 사망자 수로 세계 기록을 갱신하기도 했다.

요즘 10대들은 알지 못하지만 당시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린 대형 사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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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창원 탈옥 사건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탈옥수로 꼽히는 ‘신창원’ 사건이다.

1989년 강도치사죄로 신창원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복역을 시작한다.

그러던 그가 1997년 1월 감방 화장실 쇠창살을 빠져나가 2년이 넘도록 밖을 활보했다.

그는 탈옥 기간 중에만 절도 104건, 강도 5건, 강간 1건 등 총 142건의 범죄를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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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수가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에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한 것이 놀랍다.

 

#2 온보현 택시 살인 사건

MBC news

해당 사건은 한국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연쇄살인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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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8월경, 온보현은 절도한 차량을 택시로 위조해 범죄를 계획한다.

주로 심야 귀가 시간에 여성들을 상대로 택시를 몰며 강간 및 살인을 저지른다.

그는 38명 살해라는 범행 목표를 세웠으며, 불과 한 달동안 6건의 범행을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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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보현은 한달 반 후인 9월경에 경찰서에 자수했고 11월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3 씨랜드 수련원 화재 사건

조선일보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군에 위치한 청소년 수련관이 불에 탄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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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인해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4명 등 총 23명이 사망했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이유는 늦은 신고에 맞물려, 소방서와 수련원의 거리(70km)가 먼 탓이었다.

또한 무책임한 인솔교사들의 대응과, 하필 화재 경보기도 고장나 어린이들이 불길을 빠져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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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joins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이 1995년 6월 29일 갑자기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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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건물이 무너지며 1,445명의 고객과 종업원이 사상을 입었다.

정확하게는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로 1990년대 지어진 건물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정부에서는 모든 건물에 대해 안전 평가를 실시하는 조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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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연합뉴스

1995년 4월 28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에서 대구 지하철 1호선 상인역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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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역 공사 도중에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했으며 폭발음과 함게 50m의 불기둥이 치솟았다.

이 사고로 등굣길 학생 42명을 포함해 101명이 사망했고, 202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한 건물 300여 채가 파손되어 총 540억에 이르는 피해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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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사고가 등교 시간에 발생해 학생들의 피해를 입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6 성수대교 붕괴 사고

위키 백과사전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가 무너지며 다리가 끊긴 희대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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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한강 다리가 갑자기 무너지며, 승용차 2대와 승합차 1대가 다리와 함께 한강 위로 추락했다.

또한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2대는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3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참사로, 한강 다리라는 상징성 때문에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대형 사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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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서 초등학생 실종 사건

youtube @HMH

일명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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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대구 달서구에 살던 5명의 초등학생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간 후 실종된 사건이다.

5명의 초등학생이 같은 날 사라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경찰과 군이 대대적으로 투입됐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를 건지지 못했고, 사건 발생 11년 후가 되어서야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에서 아이들의 유골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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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원인은 규명되지 못했으며, 2006년 공소 시효가 만료되어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8 지존파 엽기 살인 사건

mbc news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지존파 일당이 5명의 피해자를 연쇄 살인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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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사체를 은닉하기 위해 소각 시설을 따로 갖출만큼 치밀했다.

또한 사체를 토막내고 인육을 먹는 등 엽기적인 행각까지 벌였다.

이들이 직접 밝힌 범행의 목적은 빈부격차와 부자들을 향한 증오였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는 부유층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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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참작된 한 명을 제외하고 범인들은 1995년 전원 사형되었다.

 

#9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

forces.gc.ca

연천군의 ‘다락대 사격장’ 중 한곳에서 포병대대가 훈련을 하다가 폭발 사고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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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10일 일어난 비극은 예비군 20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피해자 대부분이 인천광역시에 거주하던 육군 포병 예비군이었다.

예비군 사고 중 최악의 인명 피해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사건 이후 해당 포병대대는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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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

한국일보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110t급의 여객선이 침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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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에 당시 탑승해있던 362명 중 292명의 탑승객이 사망했다.

여객선은 수용 인원을 초과해 승선을 허용했고, 총 16톤에 달하는 무거운 짐, 더불어 좋지 않았던 날씨 등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나았다.

또한 선박의 작은 배수구 크기와, 사고 직후 미흡한 대처도 피해를 늘리는 데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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