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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ies: 국제이슈

2차세계대전 일본군이 벌인 역사상 최악의 ‘인육 파티’와 유일한 생존자


세계 정복을 꿈꾸고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 일본의 야욕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에 의해 꺾이고 말았다.

패전국으로 전락한 일본은 전범 재판을 받았고, 이를 통해 일본이 저지른 악행들과 살상이 모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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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잔혹한 행위는 전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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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가장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사건은 바로 ‘치치지마 식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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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과 미국은 전략적 요충지 봉쇄를 위한 대대적인 힘겨루기에 나섰다.

중부 태평양의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오사가와라 제도에서 ‘치치지마 섬’은 일본 본토와 연결되는 보급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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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곧 미국과 일본의 격전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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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2일, 미 해군은 치치지마 섬을 폭격하며 전투의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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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미 해군의 전투기가 일본의 포격에 추락하였고 그 중 바다에 떨어져 목숨을 구한 9명의 미군은 일본군의 포로로 생포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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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지마 섬 내 부대의 최고 지휘관 다치바나 요시오는 병사들에게 포로들의 처리에 관한 명령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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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관은 포로들의 장기를 적출하고, 병사들은 처형된 미군들의 인육을 요리해 먹을 것”

급박한 전시 상황에서 부족한 식량을 충당하기 위해 종종 인육을 먹었던 기록이 남아있다.

소련군, 독일군 역시 보급로가 차단되어 극심한 식량난에 처했을 경우 생존 수단으로 인육을 선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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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치치지마 섬은 보급로가 차단되지도 극심한 식량난을 겪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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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지마 섬은 주요 보급로였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 본토보다도 풍부한 식량과 물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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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다치바나 요시아는 단지 병사들의 승리 의식 고취와 사기 진작을 목적으로 인육을 먹으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는 포로의 인육을 술 안주로 요리해 먹고 대대원들에게까지도 그 인육을 배급하여 술파티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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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패망 이후, 전범 재판에서는 다치바나 요시오를 비롯한 관련 지휘관들이 모두 법정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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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기록을 보면 당시 다치바나 요시아의 당번이었던 병사는 그가 인육을 먹으며 “맛있다, 한 접시 추가!”라고 말했다고 증언해 전범 재판장을 충격으로 휩싸이게 했다고 나와 있다.

다치바나를 포함한 관련 지휘관 5명은 포로 생체해부, 식인 등의 만행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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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의 격추로 바다에 떨어졌던 9명 중 1명만이 유일하게 생환할 수 있었는데, 그는 바로 미국의 제 41대 대통령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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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추락 직전에 간신히 낙하산으로 탈출해서 바다를 표류하다 미군의 잠수정 USS Finback에게 발견되어서 구출되어 살아 날 수 있엇다.

하지만 전우들이 식인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을 알게 된 부시 대통령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일본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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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묘하게도 그가 대통령을 역임하던 때 미국은 일본과 매우 긴밀한 협력관계를 지속한 시기였다.

80년대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해서 친일적인 외교정책을 유지했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부시 대통령은 사적으로는 히로히토 일왕이 사망한 후에 인터뷰에서 ‘ 이제야 일본을 용서해줄 마음이 생겼다 ‘ 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일본에 대해서 끊임없는 혐오감을 표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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